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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기고] 라면, 열대우림 그리고 지속 가능한 팜유
24 Aug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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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기고] 라면, 열대우림 그리고 지속 가능한 팜유


기고자: WWF-Korea 박민혜 파트너십프로그램 국장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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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나무 열매. ©️ 세계자연기금 인터내셔널(James Morgan)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대표 라면 회사들이 가격을 10% 이상 인상했다.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밀 가격 하락을 들며 라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라면에는 밀 외에도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라면에 들어가는 재료가 식물성 기름 '팜유'다. 이 팜유를 어떻게 생산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지구 환경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다.


팜유 산업과 열대 우림


팜유는 팜나무 열매를 이용해 만든다. 팜유는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소비량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팜나무의 경작지 면적은 전체 식물성 기름 경작지의 10%에 불과하다. 단위 면적당 기름 생산량이 많아 공급과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만 해도 세계 팜유 생산량은 200만 톤에 불과했지만 2020년 7600만 톤으로 40배 가까이 늘었다.


팜유의 원료인 팜나무는 주로 고온 다습한 열대 우림 지역에서 자란다. 그중에서도 적도 부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각각 전체 생산량의 59%, 25%를 차지한다. 열대 우림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울창한 숲은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며 열대림에 형성된 이탄지(퇴적 토지)는 일반 토양 대비 탄소를 10배 이상 저장할 수 있어 기후 변화를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담수를 머금고 있으면서 물 보전과 기후 위기 완화에도 기여한다. 생물 다양성 집약도가 높은 곳으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문제는 팜유의 높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열대 우림이 팜나무 재배지로 개간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2001~2015년 대한민국 면적에 맞먹는 1000만 헥타르(10만㎢)가 팜유 재배지로 바뀌었다. 1초마다 열대 우림 212㎡(64평)가 사라진 셈이다. 열대 우림이 사라진다는 것은 열대 우림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팜나무도 자라지 못하고, 이는 곧 팜유 산업도 유지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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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농장에서 포착된 원숭이 무리. ©️ 세계자연기금 한국 본부 


한국 기업 '팜유 지속 가능성' 관심


팜유로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팜유를 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팜유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은 대부분 바이어에 해당하며 삼성물산·포스코인터내셔널·LX인터내셔널 등 일부 기업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팜 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생산자 역할도 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팜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대표적 방법으로 지속 가능한 팜유협의체(RSPO) 인증을 도입하고 있다. 117개의 한국 기업이 이미 RSPO 멤버로 가입했다. 그중에는 대표 라면 기업인 농심·오뚜기·삼양식품 등도 있다. 서민 음식으로 대표되는 라면에도 지속 가능한 원재료 사용과 관리가 요구되고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중요시되면서 지속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RSPO 가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RSPO 가입이 반드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서울대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RSPO 가입이 급증한 데 비해 한국의 식음료·생활소비재·바이오 에너지 분야에서 실제 인증받은 팜유 소비량은 약 18%에 그쳤다. RSPO 가입으로 인증 팜유를 사용하겠다는 ‘선언’은 많아졌지만 실질적 '이행'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U, 팜유 규제 시작


실제로 인증 팜유의 사용량이 낮은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팜유의 복잡한 공급망 내에서 인증 팜유의 안정적 조달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일부 기업은 굳이 인증 팜유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팜유는 소비자가 직접 거래해 사용하는 기름이 아니다 보니 관련 이슈를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RSPO 같은 협의체에 대한 인지도도 낮다. 이 때문에 기업이 지속 가능 팜유 도입의 시급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열대 우림 훼손과 생물 다양성 손실을 막기 위해 기업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부분 원가 상승을 이유로 인증 팜유 사용을 기피하고 있지만 WWF 연구 결과 실제 인증된 팜유로 전환하기 위해 드는 할증 비용은 라면 70g당 약 11.7원(0.009달러)에 불과했다.


국제 흐름도 팜유 산업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팜유 거래를 의무화하는 국제 규제가 빠르게 수립되고 있다. 지난 4월 ‘산림 벌채 및 황폐화 연계 상품의 수출입에 관한 규정’이 유럽연합(EU) 의회에서 통과됐다. 산림 벌채 지역에서 생산된 주요 상품의 역내 수입·판매에 대한 고강도 규제로, 팜유를 비롯해 커피·대두·고무 등이 포함된다. 새 규정이 적용되면 EU 시장에 수출하는 제품은 산림 벌채와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또 판매 기업의 위성 사진과 생산지 위치 정보 등이 포함된 이른바 '실사 선언서' 제출도 의무화된다.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수출 제한 등 기업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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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에서 친환경 전기차를 이용해 수확한 열매. ©️ 세계자연기금 한국 본부 


한국 기업도 ‘팜유’ 점검 시작해야


WWF는 2009년부터 기업의 팜유 생산과 조달 관행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한 '팜유 바이어 스코어카드(POBS)'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2021년 처음으로 14개 기업이 평가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14개사 중 아모레퍼시픽·삼양사·롯데푸드·AK켐텍·동남합성 5개사만 평가에 응했고 나머지 9개사는 WWF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거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POBS는 평가 툴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팜유 비즈니스 현황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POBS 평가에는 인증 팜유 거래량을 비롯해 산림 파괴 근절과 관련한 정책 여부, 팜유 생산 과정에서 인권 존중 정책 공개 여부 등이 포함된다. 기업은 이미 만든 기준을 참고해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부족한 영역을 보완하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또 생산 기업이 아니더라도 팜유를 만드는 현지 상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팜유 생산은 소작농을 비롯해 다양한 이해관계인이 얽혀 있어 원출처를 찾기 쉽지 않다. 지속 가능한 팜유 공급망의 투명성과 추적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구매자가 현지 공급 업체에 추적 가능한 팜유 조달을 요구하는 등 공급망 내 리스크를 식별하고 대응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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