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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스토리 [Story] 지속가능한 수산물 백일장 2등
12 Ju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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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바닷가 옆 작은 마을에 살았다. 도시로 나가는 버스도 하루에 몇 대 밖에 없었던 마을에 외식을 할 만한 식당이라고는 중국집 하나, 고깃집 하나가 전부였는데 나의 가족들은 가까운 이 식당들보다 옆 옆 마을 횟집촌까지 가서 붕장어회를 더 즐겨먹었다. 나도 기억이 닿는 가장 어린 나이부터 바구니 위에 하얀 눈꽃처럼 수북하게 쌓여있던 붕장어회를 정말 좋아했다.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 살림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싸면서도 맛이 있었고 언제나 흔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붕장어회는 이제 약간의 수고와 꽤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옛날에는 서울에서도 시장에 가면 쉽게 먹을 수 있었다는데 이제는 횟집에 가도 잘 팔지 않는다. 산지와 가까운 곳에 살지 않는 이상은 더 힘들게 더 비싸게 먹을 수밖에 없다. 물론 산지에서도 예전처럼 저렴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어획량 감소 때문일 것이라는 건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붕장어뿐이랴. 명태는 씨가 말라 국내산을 먹어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할 수 없고 나라에선 어떻게든 되돌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땐 흔해빠졌던 쥐포도 지금은 오징어보다 비싼 몸이 되셨다. 이젠 오징어가 그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바다에서 건져 먹을 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워질 지경이다. 아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왜 그때는, 많은 것이 풍족해서 아끼고 가꿀 수 있었던 그때는 이 자원들이 유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새끼며 알이며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데 어떻게 계속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동화 ‘황금 알 낳는 거위’ 속 농부를 어리석다고 비웃으면서 왜 정작 우리가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다는 건 몰랐을까. 점점 비싸지다가 결국 먹을 수도 없게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수많은 수산물들은 결국 내 생활과 생계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데. 정말이지 안일했다. 

이제야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알을 품은 해산물 같은 건 덜먹고, 금어기 생선을 잡거나 파는 걸 보면 신고라도 해보려고 한다(누가 좀 때마다 알려주면 참 좋겠다, 소문은 열심히 낼 수 있다). 혹시 기회가 닿으면 우리나라에도 지속 가능한 수산물이 유통될 수 있도록 목소리도 내봐야겠다. 내 자손들과 자손들의 자손들과 또 그 자손들도 계속해서 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를, 이 바다도 인간과 함께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원하며.

  • 43세 한소영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