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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스토리 [Story] K2 X WWF 어스키퍼: 캄차카원정대 이야기2
20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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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 오지 않을 것 같던 캄차카 원정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정보 찾기가 쉽지 않은 낯선 지역. 관광객들의 때가 묻지 않아 조금 불편해도 자연을 온전히 느끼기엔 가장 좋은 곳 캄차카. 원정을 시작하기 전 많은 정보를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 이번에도 대략적인 것만 확인하고 러시아로 떠났다. 

첫날, 캄차카 공항에 도착해서 많이 놀랐다.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공항의 모습은 전혀 없고 비닐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공항이 나타났다. 오히려 그런 풍경이 내가 낯선 땅에 있다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신나는 마음으로 향한 첫 번째 장소는 곰이 많기로 유명한 모로지나야 산이었다. 마침 연어 산란 시기라 곰들의 연어 사냥이 활발한 때라고 했다. 간단한 현지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여독을 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 날, 만발의 준비를 하고 블루 레이크 호수로 행했다. 등산 시작 전 산악 가이드가 나눠준 간식과 물을 챙겨 들고 9시부터 시작된 산행.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경사가 가파르 않아 산책길처럼 천천히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중간에 만나는 강물도 나무판이 걸쳐져 있어서 조심히 건널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개방하기 위해 나무판이나 계단을 수리하고 다듬는 중이라고 했다. 구간별로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져 13km의 산행이 지겹지 않았다.

가이드가 여기 흐르는 물은 마실 수 있다고 했지만 선뜻 마시기엔 어쩐지 망설이게 됐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1 급수보다도 깨끗해 보이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텀블러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천연 자연수라 그런지 엄청 시원했고, 긴 트레킹에 지친 목을 충분히 적실 수 있었다. 사 먹는 것보다도 깔끔하고 시원했다. 조금 더 산으로 들어가니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었고 바닥엔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4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곳. 소복소복 쌓인 눈을 밟고 걷다 보니 눈앞에 블루 레이크 호수가 펼쳐졌다. 햇빛에 비쳐 물결은 유리조각처럼 반짝였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파란 물감을 뿌린 듯 한 호수는 평생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을 것 같았다.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호수를 바라보며 먹던 도시락은 절대 잊을 수 없을 식사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곰의 등장으로 급하게 하산하게 되었지만 왕복 총 26km의 WWF 와일드 루트는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짧은 시간 동안 4계절을 모두 경험했던 특별한 여정이었다.  

셋째 날, 쿠릴 호수로 가는 헬기를 탔다. 난생처음 헬기를 타봤는데 밖으로 펼쳐진 풍경들은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형들과 모습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산과는 많이 어딘가 다른 느낌의 산이 펼쳐졌다. 쿠릴 호수에 도착해서 가이드들을 따라 이동했고, 연어를 잡기 위해 올라온 곰을 볼 수 있었다.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곰이 아니라 완전한 야생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곰을 보니 너무 신기했다. 눈앞에 펼쳐진 쿠릴 호수와 곰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또다시 헬기를 타고 장소를 이동해 호두킨스키 온천으로 이동했다. 쌀쌀하게 느껴졌던 러시아 날씨와는 다르게 온천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나라 사우나 온도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점점 더워졌다. 사방이 뻥 뚫려 360도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에서 따뜻하게 온천을 즐기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넷째 날, 아바친스키 화산을 향해 이동했다. 900m까지는 차로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내내 차가 덜컹덜컹 흔들려 대장정을 떠단다는 것을 실감했다. 차에서 내려 각자 식량을 챙기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자연의 풍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경관을 자랑했고 광활한 대자연의 위용 앞에 조금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됐다. 한국산과는 다르게 바닥이 화산 흙이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푹푹 빠지고 내려가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했다. 산악가이드를 따라 몇 번이나 걷고 쉬고를 반복하자 2,000m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이 깔려 사방이 하얀 스튜디오 같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내려가긴 아쉬워서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정상까지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산악가이드 말에 따라 대원들이 등산장비를 착용했고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은 나에게도 등산스틱과 아이젠을 빌려주셨다. 자기 몸 챙기기도 힘들 정도로 고된 산행이었는데, 먼저 선뜻 장비를 빌려주셔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남은 750m는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화산 흙길과 눈이 뒤엉켜져 한 걸음 떼기도 힘들었지만, 앞뒤로 대원들이 서로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줘서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뒤를 돌아보면 구름을 뚫고 보이는 우리가 올라온 길과 절경이 눈앞에 가득 보여 다시 힘을 내어 걸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짜릿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 나는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발아래로 펼쳐진 경치를 보니 그런 말이 절로 나왔다. 자연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모든 여정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시간이 되었다. 짐 정리를 하고 여행 내내 빠듯하게 해결해왔던 아침식사를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강당에 다 모인 K2어스 키퍼 대원들. 짧은 시간 동안 급속도로 친해진 우리들. 떠나기 전 어색하면 어떡할까 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러시아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캄차카 원정. 이 놀라운 자연을 보전하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바로바로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보고 느낀 벅찬 감동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 자식에게, 내 후손에게 물러주기 위해서.
  • K2 X WWF 어스 키퍼 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