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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인터뷰] 아직도 기후위기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04 Ap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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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정욱 WWF 한국본부 이사장



단정한 슈트 차림에 정돈된 헤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뜻밖의 소품 하나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지난달 23일, 홍정욱(53) WWF 한국본부 이사장이 판다(Panda)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인터뷰 자리에 나타났다. 


“판다는 WWF를 상징하는 캐릭터예요. 이건 종이로 만든 판다 인형인데 당시 야생에 존재하던 판다 개체 수와 동일하게 1600개가 제작됐다고 해요. 지금은 개체 수가 많이 늘었다고 하니 다행이죠.”


WWF는 세계 100여 국 3500만명의 서포터즈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 비영리 자연보전기관이다. 홍정욱 이사장은 WWF 후원자로 시작해 2017년 이사직을 맡았고 지난해 8월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번이 이사장으로서 첫 공식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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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WWF한국본부 이사장을 지난달 23일 인터뷰했다.
그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세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처음 만난 기후변화


―WWF와 인연이 꽤 깊네요. 


“2012년에 국회의원 관두고 다시 경영자로 복귀했을 때 WWF를 알게 됐어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던 시기였는데 2014년에 WWF 한국본부가 생긴다는 거예요. 당시엔 국내 환경 단체들이 다소 전투적이고 이념적인 경향이 있었어요. WWF는 ‘투게더 파서블(Together Possible)’이라는 구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지구를 공유하는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쳐 헤쳐나가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철학에 매료돼 후원을 시작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글로벌에서는 WWF의 위상이 상당히 높죠.


“설립된 지 60년이 넘은 기관이고 본부는 스위스에 있어요. 영향력으로 치면 환경 분야 NGO 중에 압도적인 1위죠. 영향력이라는 건 결국 국제사회의 환경 어젠다를 WWF가 이끌고 있다는 뜻이에요. 1980년대에는 UNEP(유엔환경계획) 등과 함께 세계보전전략(World Conservation Strategy)을 만들었고, 1990년대에는 생물다양성협약, 기후변화협약 등 세계적인 환경 관련 협약의 토대를 구축했어요.”


―환경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요.


“제가 4년 동안 국회에 있었는데 끝내면서 깨달은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정치 정말 싫다(웃음). 또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이었어요. 제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있었기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어요. 우리나라에 ‘기후변화’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이죠. 그땐 ‘지구온난화’라고 불렀잖아요. 그런데 유럽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어요. 인류가 얼마나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에 대처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이런 걸 보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거네요.


“더 충격적인 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여전히 환경을 하나의 한가한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경영자로 돌아오자마자 2013년에 친환경 식품 기업인 ‘올가니카’를 세웠어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주변 사람들이 다 반대했죠. 그래도 했어요. 가치가 수익을 만들어낸다고 확신했으니까요. 당시 국내에서는 환경을 비용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업의 목적이 수익과 성장이라면 환경이라는 가치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셈이 되겠죠. 그런데 해외 기업들은 가치로 수익을 만드는 일을 이미 하고 있었어요. 환경을 비용으로 여기고 미루는 기업은 머잖아 각종 글로벌 규제에 묶여 수출 자체가 어려워지고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반대로 환경을 투자로 생각하는 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겠죠.”



 100% 확률로 벌어질 일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죠.


“많이 달라졌죠. 당시에는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데에도 너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거든요. 친환경 식품 기업을 설립하면서 ‘리얼푸드’라는 잡지도 만들었어요. 기후변화, 음식 쓰레기, 플라스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인식도 바꾸려고요. 그 과정이 굉장히 지난했죠. 하지만 답답함은 없었어요. 그때는 이걸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거든요. 오히려 지금이 더 답답합니다.”


―어떤 점이 답답한가요.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중요성도 알게 됐지만 그사이 이미 지구는 ‘임계점’에 도달했어요. 너무 급한 상황인데도 정책 입안자나 결정권자들이 움직이지 않거나 혹은 움직이는 시늉만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답답하죠.”


―어떤 게 걸림돌일까요.


“OECD 국가 중에 한국의 탄소배출량 증가율이 1위입니다. 전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절반씩 줄여도 모자란 상황인데 감축 목표부터가 너무 소극적이에요. 기업들이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정부가 밀어붙여야 하는데 우리는 톱 라인에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탄소중립을 지연하고 있어요. 탄소중립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탄소를 줄이고 기후변화를 막는 산업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고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이런 위기감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까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느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하느냐. 우리는 지금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서있어요. 우리가 이걸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우리 뒤 세대에겐 선택권이 없어요. 이미 끝났을 테니까요. 마지막 세대라는 중압감, 위기감을 갖고 행동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러지 않고 있어요. 10년 후, 20년 후에 분명히 벌어질 일인데도요.”


―반드시 올 미래다?


“기후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건 과학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 일어나는 자연재해, 생물종 멸종은 더 극단적으로 변해갈 겁니다. 과학자들이 모여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를 넘으면 재앙이 벌어진다고 경고했는데 이미 1.2도에 도달했어요. 지금 인류가 하고 있는 행동으로 인해 자연이 들고일어나 전체 생태계를 뒤엎을 확률이 몇 퍼센트일까요. 100%입니다. 100% 확률인 재앙을 눈앞에 두고 도박을 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아는 사람이 늘어나야죠. 계속 설득하고 설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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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는 세계 100여 국 3500만명의 서포터즈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 비영리 자연보전기관이다. 
지난해 8월 취임한 홍정욱 WWF한국본부 이사장은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한 WWF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한국본부가 기여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트윈 크라이시스(Twin Crisis)가 온다


WWF는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 세계 최대 규모 환경 캠페인인 ‘어스아워(Earth Hour)’를 진행한다. 전 세계 시민이 1시간 동안 전등을 끄고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행사다. 지난달 25일 저녁 8시 30분부터 진행된 올해 행사에는 파리 에펠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로마 콜로세움 등 세계적인 랜드마크들이 참여했고 한국에서도 N서울타워, 서울시청, 국회의사당, 한강대교 등 주요 건물과 기관이 불을 껐다.


―WWF한국본부의 ‘어스아워 라이브 방송’을 7만명 넘게 시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등장하셨죠.


“제 MBTI가 ‘INTJ’라서 방송에 나가는 것도 안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인터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WWF 이벤트는 2015년 후원자가 되면서부터 계속 참여하고 있어요. 사실 어스아워가 대단한 행사에요. 190개국 2만여개의 랜드마크, 수백만 명의 시민이 동시에 참여하는 환경 분야의 빅 이벤트죠.”


―1시간 불 끈다고 환경에 영향을 크게 미치진 않겠죠. 어떤 의미를 가진 행사인가요.


“집단행동의 힘을 보여주고 위기감을 불러일으켜 정책 입안자들의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환경이나 기후변화 대응에 공감하고 협조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돌파할 기술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이 탄생할 수 있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WWF가 집중하는 이슈, 이루고픈 목표는 무엇인가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에 주목합니다. 이걸 ‘이중 위기(twin Crisis)’라고 부르죠. 둘은 절대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어요. 기후가 변화하면 생물의 서식지가 훼손되고 오염이 되면서 생물들의 생태적 습성 자체가 바뀌어버립니다. 결국 대규모 폐사가 일어나고 멸종이 되는 거죠. 실제로 지난 50년간 69%의 야생동물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생성되는 탄소의 54%를 자연이 흡수하고 있어요.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면 자연스러운 탄소 흡수가 어려워지고 기후변화는 더 가속화되겠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를 만드는 게 WWF의 목표예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과 정책, 모델을 찾고 해외 여러 지역에서 직접 사업도 진행합니다.”


―한국본부가 자체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도 있나요.


“국내 산업계의 탄소 중립을 돕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고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을 돕는 일을 합니다. 해양 쓰레기 수거 활동, 물 환원 프로젝트, 플라스틱 감축 캠페인도 진행하죠. 하지만 한반도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보고 있지는 않아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WWF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한국본부가 기여하고 영향력을 미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법조인, 금융인, 정치인, 기업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건가요.


“제 가장 큰 소명은 미래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거예요. 그보다 더 큰 소명은 없습니다. 우리가 각자 꿈꾸는 세상의 모습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공통분모는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해요. 오늘 어두운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저는 사실 희망과 가능성을 더 크게 느낍니다. 지구가 임계점에 다다른 ‘다운사이드’ 옆에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업사이드’가 있어요. 인류는 늘 이런 위기들을 돌파해왔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희망이 없다면 인류를 화성으로 옮기자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겠죠(웃음).”




원문: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바로가기 링크)

작성: 김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