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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인터뷰] "기후 대응에 금융 역할 중요…대출·투자에도 '친환경' 반영해야죠"
30 Jun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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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윤희 WWF 한국본부 사무총장  


홍윤희 사무총장이 13일 WWF의 마스코트인 팬더 인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권욱 기자 

©️서울경제 


“금융은 자본을 순환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의 ‘피’라고 할 수 있죠. 환경 친화적인 용도로만 쓸 수 있는 녹색 채권을 발행하는 등 ‘지속가능한 금융’을 구축해야 경제의 피가 제대로 돌 수 있을 겁니다.” 


홍윤희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사무총장은 13일 종로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지속가능한 금융의 역할과 중요성’을 설파했다. 환경 오염 및 지구온난화 문제의 주범으로 흔히 인식되는 산업들이 아닌, 왜 금융이냐는 질문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내놓았다. “금융 기업의 밸류체인이 기업이니까요. 금융사가 이자를 몇 %로 산정하느냐에 따라 사업 타당성과 기대 수익률이 현격하게 달라집니다.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금융은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죠.” 


금융은 '산업의 피'…녹색투자 유도해 지구환경 보존 가능


국내 금융기관 친환경 경영지표도 2년새 눈에 띄게 개선


금융기관이 ‘지속가능한 금융’의 취지에 따라 기업 경영을 평가하고 금리를 산정한다면 기업들도 이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 투자나 인수합병(M&A)도 마찬가지다. 이미 블랙록 같은 글로벌 금융사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이며 각국 정부도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통해 녹색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WWF는 이러한 추세가 국내 금융계에도 널리 확산되도록 2020년부터 국내 5개 상업은행을 포함한 아시아 금융기관들의 지속가능금융 성과를 분석한 ‘은행 부문 지속가능금융 평가(SUSBA·Sustainable Banking Assessment)’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전 세계 44개국 중앙은행과 금융 감독 기관이 금융 정책에 기후·환경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평가하는 ‘지속가능금융정책 평가(SUSREG·Sustainable Financial Regulations and Central Bank Activities)’ 보고서도 공개하고 있다. 두 보고서는 금융기관들이 지속가능금융을 구조적으로 내재화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인 만큼 따로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개선 성과와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비교 분석의 준거를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얻은 결과물을 전 세계 정부, 금융 당국, 금융사 관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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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홍 사무총장은 “2020년만 해도 우리나라가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2년 만인 2022년 보고서에서는 빠르게 개선된 점이 눈길을 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최근 2년 사이 KB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 등 세 곳이 탄소 배출량 감축 등 친환경 경영을 강조하는 과학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 인증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증권사로도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과거에는 없던 변화를 일구는 역할은 홍 사무총장에게는 상당히 익숙하다. 그는 WWF 한국본부에 합류하기 전 SK케미칼·SK건설에 몸담았다. SK그룹을 통틀어 여성 박사 1호, 해외 주재원 1호, 내부 승진 여성 임원 1호라는 타이틀을 잇따라 거머쥐었다. WWF 한국본부의 초대 여성 총장이기도 하다.


ESG 생소하던 20년전부터 기업서 관련 업무·인프라 구축


WWF선 과학적 분석으로 환경·에너지 등 솔루션 제안


2000년대부터 일찌감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업무를 담당했던 이력도 눈길을 끈다. ‘ESG’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년작)’이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나 반대편에서는 ‘과장된 주장’이라는 날선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이기도 했던 홍 사무총장은 무엇보다 과학적 근거에 집중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 이슈가 실존하며 이를 풀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환경 중심의 경영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만 해도 환경문제라고 하면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수준에 그쳤지만 리스크 관리와 기회라는 관점에서 경영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SK건설 환경사업추진실장(상무)으로서 각종 인프라, 플랜트 사업에 지속가능성을 덧입히는 작업을 맡았다.


홍 사무총장은 “일찌감치 폐기물이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했지만 너무 이른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환경의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실행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쏟아졌다. 당시 관망하거나 비관적 시선을 던지던 동료·후배들이 이제는 “일찌감치 틀을 잡아줘서 고맙다”며 따뜻한 감사와 격려를 전하곤 한다.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은 WWF라는 비영리기구(NGO)에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기존 금융의 틀을 깬다는 점에서 현재의 커리어 역시 ‘도전과 혁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변화에 따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필요성을 설득할 힘은 기업에서 온몸으로 버텨낸 시간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 사무총장은 “금융계 고위직들을 만나면 지속가능한 금융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최고경영자(CEO) 혼자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며 “조직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생소한 업무를 맡아야 하는 부담, 기존 업무에 가욋일이 더해지는 부담 때문에 저항이 있기 마련”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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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그는 “지속가능성이 다른 평가 항목 대비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지, 너무 앞서나가지는 않는지, 당장 단기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저도 기업에 몸담아봤기 때문에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지만 기업이 이러한 변화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기에 독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변화는 개별 기업뿐 아니라 산업 전반,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차원의 진통을 수반하기 십상이다. 홍 사무총장은 “순조로운 이행이 가능하도록 구조적으로 대안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화력발전소는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받지만 관련 종사자와 기업을 한꺼번에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러다이트 운동(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19세기 초 노동자들이 방직기 등 기계를 파괴했던 운동)을 언급하며 “화력발전소 일자리가 한꺼번에 없어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다른 산업으로 옮겨가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이러한 대안을 만들 수 없고 정부 차원에서 틀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정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사무총장은 “현황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방향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긴 안목으로 각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는데 정치 쟁점화되는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면서 “어느 한쪽과 척을 지는 순간 대화가 어렵기 때문에 정쟁이 아닌 WWF만의 원칙에 따라 정책 제언을 하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홍 사무총장은 WWF의 활동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로 봐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NGO가 나라에, 혹은 개별 기업에 압박을 준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NGO야말로 진정한 애국이고 애민정신”이라며 미래를 위해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주나 유럽 선진국들은 파리협정 같은 국제 무대에서 어젠다를 선점하고 역할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역장벽이 생긴다고 불평한다”는 따끔한 지적도 곁들였다. 그는 “무역장벽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가야 할 방향이라면 주도권을 잡자”며 환하게 웃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1961년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비영리 자연 보전 기관으로 전 세계 후원자 수만 600만 명이 넘는다. 흔히 ‘멸종 위기종 보호 단체’라고 알고 있지만 기후에너지·해양·식량·산림·담수·야생동물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 문제인 만큼 지역 토착민에서부터 정치인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 중이다. 홍 사무총장은 “WWF는 과학적인 분석 도구와 방향을 제시하고 이해 당사자들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오며 투쟁보다는 솔루션에 기반한 접근을 통해 기업들을 바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She is… △1984년 로즈칼리지 화학과 △1988년 노스캐롤라이나대 화학 박사 △2008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MBA) 석사 △1988년 허큘리즈 Inc. 연구 △1992년 SK케미칼 연구, 미주 마케팅, 사업개발 △2008년 SK건설 환경사업추진실장 겸 연구소장 △2018년 국립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 △2020년 WWF 한국본부 사무총장



원문: 서울경제(바로가기 링크)

작성: 유주희 기자